JAKEHS十年の歩み(韓国語)

JAKEHS 10년의 행보 -추가 10년을 위해-

히가시 블록 대표 타케이

이치 (도쿄 도립 히비야 고등학교 외)

고등학교 한국조선어교육네트워크(이하 JAKEHS)는 1999년 산성을 올리고 지난해 2009년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활동을 되돌아 보면서 향후 10년을 향한 비전을 생각하고 싶다. 또한, 본고에서는 언어명을 한국어로 한다.

전사
고등학교에 있어서의 한국어교육은 73년에 미나토가와공업고교, 히로시마국제학원에서 시작된 것을 효야로 한다. 그 후, 점차 교수가 증가해, 2009년에는 303교를 세기에 이르렀다(문부 과학성 「고등학교 등에 있어서의 국제 교류 등의 상황 조사」(2010)). 그 강좌의 설립 경위도 인권교육, 한일교류, 이문화교육, 어학교육 등으로 나뉘어, 언어명도 ‘조선어’, ‘한국어’, ‘한국·조선어’, ‘한글’ 등으로 다양 (야마시타 마코토 「일본의 고등학교에 있어서의 한국조선어교육의 성과와 과제-언어의식의 상대화와 평화의 문화의 창조」〔제26회 국제이해교육상〔2000년〕응모논문〔테즈카산학원대학 국제 이해 연구소]]; 참조). 담당 교원도 일본인, 재일, 한국 출신자 등으로 헤어져 교원 면허를 소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일본과의 역사적 관계와 남북 분단도 반영하여 교원 강좌에 대한 생각과 수업의 역점도 마을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이 서로 연락을 취할 곳도 없었다. 대부분이 혼자 교과이고, 그 대부분이 비상근이기 때문에, 수업에 대해 다른 교원에게 상담할 기회도 적고, 각 사람이 가르치는 방법이나 수업 경영의 방식에 불안을 가지면서 고군 분투하고 있는 상태 이었다.

그런데, 「주일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이하, 문화원)과 97년부터 한국조선어 교육조사에 착수하고 있던 「재단법인 국제문화포럼」(이하, TJF)에 의해, 98년에 제1회 ‘고등학교 한국어 교사 연수회’가 기획되어 한국 YMCA에서 개최되었다. 이에 따라 고등학교 교사들에게 ‘만남의 장소’가 제공됐다. 이곳에 모인 약 40명의 교사들은 서로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것을 깨닫고 연계할 필요를 느꼈다. 마지막 날에는, 그 후의 연수의 방향성을 둘러싸기 위해서, 고교의 교원 5명으로 이루어진 돌보는 사람회가 발족했다. 이것이 99년의 제2회 교사 연수회에 있어서의 JAKEHS의 발족으로 이어졌다

【초창기】1999년~2004년
●네트워크 형태
99년 8월, ‘제2회 한국어 교사 연수회’라는 제공된 ‘만남의 장소’ 속에서 JAKEHS는 산성을 올렸다. 전술한 사정에서 강좌의 설립목적, 언어명칭, 수업에 있어서 교원의 역점을 두는 방법, 정치적 배경은 문제로 하지 않기로 했다. 어느 입장의 사람이라도 참가할 수 있다는 것과, 어느 입장에도 통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시에 한국어 교원에 불구하고 회원을 모으기도 했다. 한국어 교사의 대부분이 비상근이며, 다른 전임교사가 강좌를 지지하고 있는 경우도 많고, 이 사람의 이해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정책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지역에 따라 한국어 교육에 대한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전국을 3블록으로 나누어 각각 동일본 블록, 서일본 블록, 남일본 블록(나중에 ‘일본’은 삭제)으로 하기로 했다. 이 중 서쪽 블록과 남쪽 블록의 경계는 여러 번 수정되었습니다.

또한, 전술한 바와 같이 강좌명도 다양하다. 언어명의 차이는 일본의 한반도를 둘러싼 다양한 입장과 관계하기 위해 어느 곳에 통일하기는 어렵지만, JAKEHS에서는 ‘한국조선어’라는 명칭을 채용하기로 했다.

단체의 형태는 네트워크 형식으로 했다. 설립부터 2004년까지는 TJF에 사무국을 맡았다. 여기서 목표로 한 것은 사무국이 전체를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활동을 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완만하게 관계를 가지면서 성과를 공유하는 것이었다. 다만, 이 점에 대해서는, 창설 10년을 경과한 현재라도, 「네트워크」기능이 충분히 발휘되어 있다고는 말할 수 없고, 그 모색이 계속되고 있다.

●주요 활동
이 시기, 1년에 1회(04년은 2회, 00:하치오지, 01:오사카, 02:가고시마, 03:마츠모토, 04:돗토리, 쓰시마)의 전국 연수회와, 각 블록에서의 정례회가 이루어졌다. 전국연수회에서는 고립된 교원끼리의 ‘만남의 기쁨’도 확인됐다.

그 활동에는 교재 연구 등 그 뒤에 이어지는 활동의 단서가 보인다. 동일본 블록에서는 「교류 어휘집, 와, 통한 한근말」작성(01년), 서일본 블록에서는 일본 최초의 고교생을 위한 한국어 교과서의 제작이 시작되었다(01년). 이 교과서는 몇 번의 시행판을 거친 후 ‘좋아야 넨한글'(백제사, 04년), ‘좋아야넨 한글, 워크북'(백제사, 05년)으로 결실했다. ‘교류어휘집’은 시험판으로 끝났지만, 이것은 ‘한글@홈스테이'(백제사, 2005년)로 이어졌다.

또한 한일문화교류기금과 제휴한 고등학교 한국어 수강자와 도쿄한국학원 학생들의 공동 워크숍 ‘한국어로 노지마'(01, 02년), 한국국제교육원 진흥원과 제휴한 ‘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 가자”(01, 02, 03) 등이 열렸다. 교원연수 프로그램으로는 한국국제교류재단과의 제휴로 서울대학교 교사연수 프로그램 등이 실시되었다. ‘한국어로 노지마’를 제외한 많은 프로그램은 모두 TJF의 전면적인 협력을 얻어 진행되고 있다.

특필되어야 할 것은, 천리대학과 간다 외어대학에 의한 고등학교 외국어 일종 면허 취득을 위한 여름철 집중 강좌가 행해진 것이다. 이는 한국어 교사면허 소지자가 적은 것을 해소하기 위해 TJF를 중심으로 1999년 이후 준비해 온 것이다. 강좌는 2001년부터 2005년부터 2회 진행되었지만, 이에 따라 기초면허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 면허를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덧붙여 전국 연수에 대해서는 2004년부터 문화원의 지원 아래, 1일을 「한국어 교사 연수회」, 또 1일을 「JAKEHS 연수회」로서 개최하게 되었다. 이것은 2009년까지 계속되었다.

●돗토리 대회와 문제점
당초 JAKEHS는 많은 교사를 모으고 활동의 폭을 넓히기 위해 회원수를 늘리는 데 힘을 쏟았다. 밖에서 단체로 평가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인원수가 필요한 것과 많은 한국어 관계 교원의 참여를 촉구하고 싶은 경우가 있었다. 각 지방에서 대회가 열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는 각 블록의 정례 회의도 마찬가지이며, 특히 동일본 블록에서는 도쿄, 가나가와 이외에, 야마나시 시오야마, 마츠모토, 센다이, 지바 이치카와, 우라와 등에서도 개최했다. 이러한 움직임 자극이 되어 가고시마, 미야기, 나가노, 돗토리에서 지역 활동이 이루어졌다. 이 중 가고시마에서는 현재도 활동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활동 중에서 가장 화려한 것이 2004년에 돗토리현 미사사초에서 행해진 연수일 것이다. 이 대회에서는 당시 가타야마 돗토리현 지사가 기조 강연을 했다. 이것이 외부에 준 영향은 컸다. JAKEHS가 현직의 지사까지 내연하는 단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연수는 JAKEHS 내부의 문제점이 명확해진 대회이기도 했다. 모임이 결성되어 5년 만에 회원의 기분도 ‘만남의 기쁨’의 흥분에서 냉정한 것으로 바뀌어 온 적도 있다. 지금까지의 연수 운영에서는, 수업 연구가 거의 행해지고 있지 않은 것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교 교사의 역할은 고등학교에서의 교육 활동이다. 아무리 학생을 모아 와도 수업이 조금이라도 학습자에게 마이너스의 효과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수강생에게 강좌 수료 후에도 학습을 계속하는 기분이 되지 않는다. 물론, 지금까지의 대회에서도 수업에 대해 다루어지고 있지만, 유감스럽지만 각자의 수업에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않고, 단순한 수업의 소개해 끝나고 있었다. 그래서 수업을 좋게 하기 위한 지속적인 수업·교재 연구의 필요성이 자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돗토리 대회는 그 후의 JAKEHS의 행보에 있어서 큰 전기가 되는 대회가 되었다.

전환기 2005년~2009년
이러한 문제점은 돗토리에 이어 쓰시마 대회에서도 강하게 자각되었다. 그래서 JAKEHS는 수업·교재 연구를 깊게 하고 수업의 질을 향상시킴으로써 한국어 학습자에게 일정한 성과를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로 했다. 좋은 수업을 함으로써, 그 수업에 매력을 느끼는 학생수를 늘리고, 그 후에도 한국어 학습을 계속할 수 있는 계기를 학생에게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교과에서는 당연한 일을 자각하기까지 5년이 걸렸다.

이러한 자각이 생긴 것도 이 시기 각지에서 고교 개편의 흐름 속에서 많은 종합고등학교가 개교하고 한국어 강좌가 늘어난 것도 관계할 것이다. 특히 가나가와현은 한국어 담당이 아닌 전임교사가 강좌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 다른 교과의 상황과 비교하기 쉬운 상태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방침으로의 전환은 2005년의 연수를 담당하는 동블록의 정례회에서 2005년 1월에 명확하게 내세워진 것이었다. 그 때 고등학교 수업이기 때문에 단순한 한국어 수업이 아니라 후기 중등교육의 틀 = ‘고등학교 학습활동 속에서 어떻게 학생을 키우는가’라는 관점이 중요하다. 가르치는 측의 자각이 요구되는 내용이지만, 이 변경은 필연적으로 회원의 인원수나 구성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주요 활동
이 중에서도 계속해서 연 1회의 연수회가 행해졌다(05:요코하마, 06:히로시마, 07:후쿠시마, 08:오사카, 09:도쿄, 10:오사카). 07까지 각 지방에서 행해진 것은 지방 개최에 의한 현지 교원들의 네트워크화도 의식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회의 테마도 다양한 것이 모색되었지만, 불충분하면서도 수업 실천과 관련된 테마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2005년의 요코하마 연수에서는 그 때의 연수 테마에 맞추어, 블록내에서 반년 가까이 준비를 거듭하고 있어, 후술하는 「학습의 목표」의 TJF에 의한 프로젝트화에, 이 일부가 연결되었다.

이 시기도 가나가와, 효고, 후쿠오카에서는 현지 교원의 네트워크화가 행해져, 2010년 현재도 정기적인 활동이 행해지고 있다. 초창기 지역 활동에 비해 지속적으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 고등학교의 교원이 중심이 되어 현장에 축족을 두고 있는 곳에 특징이 있다. 지역 활동이기 때문에 JAKEHS 회원 이외의 사람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지만, 그 활동은 회원을 통해 완만하게 JAKEHS와 연결되어 있다.

이 기간에도 직접 수업활동에 도움이 되는 성과가 나오고 있다. 「고등학교의 중국어와 한국조선어 학습의 목표(시행판)」(TJF:07),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액티비티 45」(백제사, 09), 「신·좋아야넨 한글」( 백제사, 09). 이 중 ‘학습의 목표(시행판)’는 TJF가 2006년 문부과학성 위촉 사업으로 시작한 ‘고등학교에서의 외국어 교육의 목표·내용·방법에 관한 연구’의 성과를 정리한 것으로 있다. 시험판 작성과 현재 행해지고 있는 완성판 작성을 위한 프로젝트 팀에는 JAKEHS 회원도 참가하여 연구가 계속되고, ‘학습의 목표’에 대해서는 매년 연수회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연구가 일정한 성과를 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최근에는 드디어 그 성과가 보이게 되었다. ‘신·좋아야넨 한글’도 ‘학습의 목표’의 성과가 반영되어 있어 보다 실천적인 각도에서 내용을 다룰 수 있는 구성이 되었다.

이 시기 JAKEHS에 의한 학생들의 한국 파견 활동은 볼 수 없다. 하지만 문화원이 2003년에 시작한 ‘말해보자 한국어’ 도쿄대회, 오사카대회에서는 JAKEHS가 기획단계부터 참가하여 그 후 각지에 퍼진 지방대회에도 많은 고등학생들이 JAKEHS의 협력하에 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도쿄대회는 2009년도부터 고교생 부문이 독립하여 진행되게 되었고, JAKEHS의 교원이 전면적으로 관여하게 되었다. 또 2008년부터는 한국의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 의해 금호아시아나배 ‘말하자 한국어’ 고교생대회가 시작됐다. 이는 ‘말하자 한국어’의 전국대회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로 인해 많은 고등학생들이 한국연수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이는 2004년까지의 한국 파견이 형태를 바꾸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말하자 한국어’나 ‘금호아시아나배’는 JAKEHS 회원이 아닌 학교 학생들도 참가하고 있어 한국어 학습자의 밑변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전환기란
전환기 5년간의 활동은, JAKEHS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는 한편, 밖에서 보고 알기 어려운 인상을 주게 되었다. 그 원인으로는 JAKEHS가 목적이라는 전략을 결정했지만, 그 때문에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전술이 없었기 때문이며, 동시에 대외적인 홍보 활동이 충분하지 않은 것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JAKEHS 홈페이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기도 있었다. 또한 JAKEHS 설립 이래 매년 대회 연수에 대해서도 그 회의록은 있어도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떠한 축적이 있는지를 밖에 전달하는 장치가 정돈되어 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돗토리, 쓰시마 연수로 보아 온 문제점이, JAKEHS 전체로서 자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대회에 대한 JAKEHS로서의 평가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후의 JAKEHS가 목표로 하는 활동이나, 대회 운영이 부드럽게 가지 않는 면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어떤 단체에서도 전환할 때는 큰 통증을 동반하는 것이 보통이며, 그것은 JAKEHS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보다 JAKEHS의 활성화를 목표로 하기 위해서는 다시 돗토리, 쓰시마 대회를 되돌아 보면서 활동 방향을 명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향후 10년을 향해
여기에서 향후의 JAKEHS의 본연의 방법을 생각해 보고 싶다. 그것은 무엇보다 후기 중등교육장에서 고등학교 현장에서 더 나은 수업을 하기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그러면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양질의 한국어 교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력 있는 수업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그 매력을 느끼고 학생이 모여 오게 되지만, 그 때문에도 수업 연구를 빠뜨릴 수 없다.

수업 기술과 함께 개별 교사의 질 향상도 중요합니다. 처음 언급했듯이 한국어 강좌는 그 과목의 성격 때문에 교원면허를 가진 사람이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교직에 대한 의식 자체도 다양하다. 게다가 다른 교과와 달리 한국어 강좌의 대부분이 비상근이 담당하는 1인 교과이며 주위에 상담하는 상대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담당자가 혼자이기 때문에 그 교원 자신의 활동이 강좌 전체의 평가에 직결하게 된다. 그러므로 학생을 많이 모으기 위해서는 교원이 자기를 닦고 학교교육이라는 틀 안에서 어떻게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사의 자질을 높이는 연수도 필요할 것이다. 동시에 한국어 교원뿐만 아니라 다른 교과의 교원에서 본 한국어 교육의 존재도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별 네트워크화도 필요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미 가나가와, 효고, 후쿠오카, 가고시마 등에서 교원의 네트워크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공립고등학교의 경우, 도도부현 단위로 교육사정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각각 중에서의 정보교환도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활동을 JAKEHS와 완만하게 연결시키면 JAKEHS의 네트워크 기능의 강화로 이어진다.

또한, 다양한 연구 활동도 필요할 것이다. 현재에도 몇 가지 프로젝트가 존재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더 많은 연구 활동이 요구될 것이다. JAKEHS 이외의 멤버와 실시하는 것도 가능하며, 이들의 제휴에 의해 네트워크의 활동이 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면도 정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JAKEHS는 창설 당시부터 윤택한 지원으로 대회 운영을 해왔다. 2003년의 마츠모토 대회 때에 그것을 재검토하는 기운이 있어, 가능한 한 손 도시락으로 대회를 가자고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 이은 2004년 돗토리 연수 이후 문화원의 재정지원을 얻게 되었고, JAKEH로서 재정운영에 대해 논의하자는 의식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동종 단체의 재정운영이 손 도시락 중심인 것과 재단 등의 재정지원이 일정한 기한임을 감안하면 JAKEHS도 되도록 손 도시락에서 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한국어 관계 교원의 JAKEHS 참가가 요구된다. 지난 몇년간 한국어 강좌 개설교가 늘어나고 있는데도 JAKEHS 측에서 회원의 발굴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현상이다. 그 중에서 새로운 회원과의 ‘만남’도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축복을 받아 JAKEHS는 문화원과 TJF의 지원으로 탄생했습니다. 지원이 없으면 이런 단체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JAKEHS가 회원의 자발적인 연수회에 의해 자각적으로 결성한 단체가 아니었던 것도 사실이다. 마치 JAKEHS라는 배에 태워달라고 깨달으면 항해에 나왔다는 상태였던 것 같다. 그곳이 JAKEHS의 본연의 모습을 모호하게 해 버린 것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만큼 향후의 JAKEHS를 계속해서 활발화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후기 중등교육의 교육활동에 관점을 두면서 무엇을 목표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정하고 스스로 배를 조타하기 시작하는 시기에 와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