設立の経緯(韓国語)

설립 경위

●1970년대 초부터 1980년대 후반
1973년도부터 효고현립 미나토가와고등학교(조선어)와 히로시마전기대학 부속고등학교(현 히로시마국제학원고등학교, 초성어)에서 한국조선어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로 효고현과 오사카부의 공립교에서 「조선어」의 수업이 개시되었지만, 70년대 말에 6교에서 밖에 개설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어, 도입하는 학교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만, 그 수는 80년대 말에 있어서 약 20교였다고 추정됩니다. 1980년대를 통해 공립교보다 사립교에서 ‘한국어’ 개설교가 증가했습니다. 84년에 시작된 NHK 한글 강좌,19 88년 서울올림픽의 영향 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국조선어교육조사(1990년대 후반~)
1995년에는 전국에서 75개교, 97년에는 103개 고등학교에서 한국조선어 수업이 실시되게 되었습니다. 실시교의 증가에 수반해, 90년대 후반에 들어가면, 담당 교원의 사이에 고등학교의 한국조선어 교육을 전국적 시야로 파악하는 시도가 행해졌습니다.

●1996년 한국조선어교육을 처음으로 조사
야마시타 마코토 선생님(가나가와현)이 전국의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처음으로 한국조선어 교육의 조사를 실시한 것은 특필되어야 합니다. 교사 측에서 뿐만 아니라 학생의 반응을 포함한 수업의 실태를 부각한 것은 전국의 한국조선어 교사에게 확실히 무언가를 전했다. 그것은 JAKEHS 결성으로 이어집니다. 니시자와 토시유키 선생님(나가노현)이, 학교에 일해 한글 기초의 수업을 스타트한 것도 같은 무렵입니다.

●국제문화포럼에서 한어교육 조사
당시 국제문화포럼은 고등학교의 한국조선어교육에 대해 조사하려고 했습니다. 그 조사의 관련으로, 각지에서 한국조선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분들을 만나, 한국조선어에 대한 생각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그 몇 년 후, 그들을 포함한 교사들이 중심으로 JAKEHS를 시작합니다. 70년대 초부터 효고, 80년대 중반부터 오사카, 90년대 후반부터 구마모토에서, 각각의 지역이나 학교에서 한국조선어 교육을 지지해 온 영어나 국어의 교사들이, 서로 연락을 취할 수 없는 채 전국에 점 존재했던 것입니다.

●교사 연수회의 개최(1998년)
1998년 6월 국제문화포럼이 고등학교 한국어교육조사의 중간보고를 발표했다. 보고서를 읽고 관심을 품은 한, 김금평씨(김금평 당시 주일 한국문화원의 문화관)로부터, 일본의 한국조선어 교사의 연수 사업에 대해서 제안이 있었습니다. 조사에서 파악하고 있던 고교 교사 주체의 연수회라면 꼭 협력하고 싶다고 신청하면, 곧 받아들여졌습니다.

●제1회 고등학교 한국어 교사 연수회 개최
1998년 8월에 개최된 제1회 「고등학교 한국어 교사 연수회」에는, 전국으로부터 고교 교사 34명과 대학 관계자가 참가했습니다. 3일간의 회기중, 참가한 교사가 각각의 생각이나 안고 있는 문제를 토로했습니다. 한어와 일본어를 섞어 호소하는 한국조선어 수업의 현상과 평소의 고민을 서로 탐하도록 들었다. 그 후, 교사들의 제휴가 급속히 퍼졌습니다. 12월 초 전국에서 5명의 돌보는 사람이 모여, 제2회 연수회를 향한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JAKEHS의 결성(1999년 8월)
1999년 8월, 제2회 교사 연수회의 마지막 날, 고등학교 한국조선어교육네트워크(JAKEHS)가 일어났습니다. 지하수맥처럼 흐르고 있던 한국조선어 교사의 생각이 네트워크라는 완만한 흐름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JAKEHS 출시 1개월 전, 돌보는 사람의 연락 수단이 팩스와 전화에서 이메일로 바뀌었습니다. 단시간에 만회의 취지나 명칭을 정하고, 회칙이나 운영 방법을 검토하는 작업은, 동보 메일이 없으면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고등학교 한국조선어교육네트워크」라는 명칭도 상당히 긴 교환 끝에 정해졌습니다. 이 말은 남북 분단에 의해 주로 2개의 호칭이 생겼습니다만, JAKEHS에서는, 멤버 공통의, 이 말에 대한 애정과, 그 보급을 향한 열정을 공유했습니다. 남북의 말은 같다, 그 말을 고교생에게 배우고 싶다는 주장입니다.

●JAKEHS 사업의 다각화(2000년 전후)
JAKEHS 사업은 2000년경부터 다각화되었습니다. 관련 단체나 대학 등에 일해, 기획 단계부터 참가하고 있는 사업도 있습니다.

●한일 청소년 교류 워크숍 「한국어로 노지마」(2001-02년)
한일문화교류기금의 주최사업인 ‘한일청소년교류 워크숍’에 JAKEHS가 기획 참여하는 형태로 협력했습니다. 가나가와현 노지마(노지마)에서 행해진 합숙 형식의 워크숍이므로, 「한국어로 노지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전국의 한국어를 배우는 고교생 20명, 도쿄 한국학교 고등부의 고교생 10명, 한국인 유학생 10명이 요코하마시 노지마 청소년 연수 센터에서 1박 2일, 그룹으로 나뉘어 커뮤니케이션 게임이나 한국어의 스킷 에 도전했습니다. 2002년 3월, 거의 같은 규모로 제2회 워크숍을 실시했습니다만, 재정적인 이유도 있어 제3회 이후는 실시되고 있지 않습니다.

●「고교생을 위한 한국조선어교과서Ⅰ좋아야넨한글」시용판(02년), 개정판(03년), 시판본 발행(04년)
「학습의 용이성」작성에서 시험판의 제작에 천 JAKEHS 발족 당초부터 서일본 블록에서 고등학교의 한국조선어교육의 학습의 목표 만들기에 착수, 2000년 8월의 JAKEHS전국 연수회에서 그 시안을 발표했습니다. 고교교육의 학습지도 요령에는 한국조선어교육에는 아무런 규정도 없고, 개개인의 교원이 시행착오로 수업을 실시하고 있는 실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습의 용이함」시안을 토대로 하고, 2000년도의 후반부터 1년 반 너무 걸려, 2002년 4월에 「좋아야넨 한글」의 시험판을 발행했습니다(백제사).

●개정 시험판과 피드백을 거쳐 시판본을 발행
간사이 지방의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좋아야넨」의 시용판을 사용한 수업을 실시해, 거기서 밝혀진 문제점을 근거로 해 시험용 개정판의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2003년 1월에 개정판을 발행했습니다. 2003년도를 통해, CD의 작성이나 워크북, 교사용 매뉴얼의 작성에 임했습니다. 결국 14명에 이르는 편집위원의 합동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2003년도를 통해서 시판본 작성을 위한 편집 교정 작업을 실시해, 2004년 2월말에 발행했습니다.

●기다리는 「고교생을 위한 한국조선어Ⅱ,Ⅲ」의 발행
고교생용 최초의 한국조선어 교과서Ⅰ는 입문단계(2단위, 1년간 약 50시간)용이지만, 그 과정을 마치고 Ⅱ의 수준으로 진행되는 고교생을 위한 교과서도 요구된다. 있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교무에 쫓기면서,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해 교과서를 집필·편집하는 것은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하고, 현직 교원이 담당하는 일로서는 무겁다고 할 수 있습니다. 10명 이상의 편집위원이 팀워크를 유지하고 작업을 하는 것도 곤란을 수반합니다. 많은 과제를 안고 있지만, 계속 증가하는 학습자의 수요에 응하기 위해서도 교과서의 Ⅱ, Ⅲ의 발행이 기다립니다.

●서울대학교 고등학교 한국어교사연수회 개최: 제1기(2002-05년)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을 얻어 2002년 8월에 스타트했습니다. 일본 고등학교의 한국조선어 교원을 주된 대상으로 하는 교사연수 프로그램이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2005년까지 실시되어 일본에서 총 80명의 교원 등이 참가했습니다.

●대학 등 한국어 교사 연수회(교토 연수) 개최(2004년-)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을 받아 2004년 8월에 시작한 6일간의 연수 프로그램입니다. 대학이나 고교, 시민 강좌나 어학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원이나 강사를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서일본지역의 대학교원이 주로 연수의 강사를 근무해, 2005년부터는 조선어 교육 연구회가 공동 개최하고 있습니다.

●한국어 교사 연수회(도쿄 연수) 개최(2004년-)
주일한국문화원과 한국의 국립국어원의 지원을 얻어 2004년 8월에 스타트한 5일간의 연수 프로그램입니다. 대학이나 고교, 시민 강좌나 어학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원이나 강사를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으로부터의 파견 강사와 도쿄 외국어 대학 대학원의 교원이 연수의 강사를 맡고 있습니다.

●대학등과 고등학교에 있어서의 한국조선어 교육의 조사:2002-03년(2005년에 보고서 발행)
2002년도부터 2004년도에 걸쳐 국제문화포럼이 실시한 일본 대학 등에서 한국조선어교육의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2003년 6월에 중간보고를 발표한 후 일본과 한국의 관련 학회에 보고하고, 그 코멘트를 근거로, 최종 보고서를 2005년 5월에 발행했습니다. 보고서의 전문을 웹 사이트에 올려 놓았습니다.